TO 초정 님 : 아들아, 지는 꽃의 힘을 아느냐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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<br><br>=======================================<br> 아들아, 지는 꽃의 힘을 아느냐: (초정 , 2006-03-27)<br> <P align=center>2003년, 올해의 문장상에서 수필부문을 수상한 '안도현'시인의 "아들아, 지는 꽃의 힘을 아느냐" 입니다.<BR><BR><아들아, 지는 꽃의 힘을 아느냐><BR></P> <P align=center>아들아!<BR>가을이 저렇게 소리도 없이 왔다.<BR>마당가의 석류나무가<BR>네 주먹만한 열매를 맺었구나.<BR>작년에도 두 알이더니<BR>올해에도 변함없이 딱 그대로다.<BR>석류나무는 더 굵은 열매들을,<BR>더 많이 주렁주렁 매달아<BR>우리한테 보여줄 수도 있었을 것이다.<BR>하지만 그도 그만 힘이 부쳤나 보다.<BR>나뭇가지가 턱없이 가늘어서<BR>석류 두 알도 저렇게<BR>간신히 매달려 있는 것처럼 보이는구나.<BR> <BR>아들아,<BR>석류나무 밑동에 여린 줄기들이<BR>오종종 모여 있는 것을 본 적이 있느냐?<BR>사람들은 그걸 보고<BR>석류나무가 어린 아가들을 데리고<BR>함께 자란다고 말하지.<BR>먹여 살려야 할 식솔이<BR>많이 딸린 가장을 보는 것 같단다.<BR>그 아가들은 어미의 뿌리에서 나온 것들인데,<BR>어미가 취해야 할 양분을 빨아먹고 자란단다.<BR>하지만 어미 석류나무한테서<BR>실한 열매를 얻으려는 생각으로<BR>나는 그 어린 것들을 이따금 잘라주곤 했었다.<BR>매정하고 아까운 일이지만 할 수가 없었지.<BR><BR>나는 또 지난 여름<BR>땅으로 낭자하게 뚝뚝 떨어지던<BR>그 많은 석류꽃들을 생각한다.<BR>아들아,<BR>너는 주홍빛 석류꽃을 기억하느냐?<BR>석류꽃도 봄날의 동백꽃처럼 온몸을<BR>송두리째 내던지며 처연하게 진단다.<BR>한잎 한잎 나풀거리지 않고<BR>꽃받침에서 몸을 떼는 순간,<BR>마치 결심한 듯이<BR>아무 주저함도 없이 낙화하는 꽃이란다.<BR><BR>제 빛깔이 채 바래기도 전에<BR>지고 마는 꽃을 보면서<BR>나는 왠지 아깝다는 생각을 하곤 했었다.<BR>아들아, 내가 목이 댕강 떨어진 석류꽃을<BR>몇개 주워 들고 들여다보고 있을 때였다.<BR>네 할머니께서 물끄러미 나를 보시더니<BR>무슨 청승이냐는 듯 한마디 던지셨지.<BR><BR>꽃이 그냥 지는 줄 아나?<BR>지는 꽃이 있어야 피는 꽃도 있는 게야.<BR>네 할머니는 지는 꽃 때문에<BR>석류알이 굵어진다고 말씀하시는 거였다.<BR>꽃 지는 것 보며 공연히 마음이<BR>싱숭생숭해질 필요가 뭐 있겠느냐며 웃으셨지.<BR><BR>아들아, 알겠느냐? 그러니까 저 석류 두 알은<BR>저 혼자의 힘으로 열매가 된 게 아니라는 말이다.<BR>지난 여름 땅으로 떨어져간 수백송이의 꽃들,<BR>그 지는 꽃들의 도움으로<BR>가까스로 열매가 맺힌 거란다.<BR><BR>아들아, 아직 너는 어려서<BR>언제든 화사하게 피는 꽃이 되고 싶겠지.<BR>하지만 지는 꽃을 잊지 말기 바란다.<BR>사과 한 알을 먹을 때에도 그 사과를 위해<BR>떨어져간 수많은 사과꽃들이 있었다는 것을<BR>깨닫게 되기를 바란다.<BR>오늘 아침 네가 떠먹는 한 숟갈의 밥에도<BR>농민들의 땀방울과 뜨거운 햇살과<BR>바람소리가 스며들어 있다는 것을 알기 바란다.<BR>그리하여 이 가을에는<BR>부디 그 앞에서 겸손해지기 바란다.<BR><BR>언젠가 네가 학교에 갔다가<BR>흠씬 두들겨 맞고 돌아온 적이 있었다.<BR>한쪽 눈두덩이 시퍼렇게 부어오른 것을 보고<BR>나는 그때 얼마나 화가 났는지 모른다.<BR>그래서 나는 이렇게 말했지.<BR><BR>"너도 그 자식 한대 세게 때려주지 그랬어?".<BR>그때 네 할머니가 손을 내저으셨지.<BR>"아니다, 굳이 그럴 거 없다.<BR>지는 게 나중에는 이기는 거란다".<BR>그때 할머니의 그 말씀을<BR>한참 세월이 흐른 지금에 와서야<BR>나도 조금 이해하게 되었단다.<BR><BR>아들아,<BR>대부분 사람들은 싸움에서 승리한 사람들이<BR>세상을 이끌어 간다고 생각하지.<BR>하지만 그 말을 전폭적으로 믿지는 마라.<BR>세상에는 승리한 사람보다는<BR>실패한 사람이 많고,<BR>실패한 사람 때문에<BR>승리한 사람이 두드러져 보이는 법이란다.<BR>지는 꽃이 있어야<BR>열매가 맺히는 것처럼 말이다.<BR>그렇다고 너한테 늘 실패하는<BR>인간이 되라고 말하는 건 아니다.<BR>실패할 줄도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.<BR>실패 앞에서 기죽지 않을 용기도<BR>때로는 필요하다는 것이다.<BR><BR>아들아, 네 할머니가 누구시냐?<BR>계단을 오를 때면<BR>몇 걸음 못가 숨을 내쉬어야 하고,<BR>이제는 꽃으로 따진다면<BR>바로 지는 꽃이 아니겠느냐.<BR>그 지는 꽃 때문에 이 아비는 아비대로<BR>세상을 그럭저럭 살아가고 있고,<BR>또 너의 키는 하루가 다르게<BR>쑥쑥 커 가는 게 아니겠느냐?<BR></P>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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